그리스 신화로 보는 강요받은 동석자의 책임 (페미오스의 간청, 증언과 구별,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22권에서 구혼자들과 어울려 노래하던 페미오스가 악기를 내려놓고 오디세우스의 무릎을 붙든다. 나는 이 장면에서 질문 하나를 고른다. 잘못한 무리 곁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그 사람까지 같은 책임을 져야 하는가? 그가 스스로 말한 강요와 텔레마코스의 증언, 그리고 오디세우스의 최종 조치를 차례로 읽어 보려 한다.

이미지: Christoffer Wilhelm Eckersberg, Ulysses' Revenge on Penelope's Suitors,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그림은 궁전 전투를 그린 작품이며 페미오스의 간청 장면을 직접 재현하지 않는다.
페미오스와 메돈의 구명 신화 이야기
오디세우스는 오랜 부재 동안 자신의 집을 점거하고 재산을 축낸 구혼자들과 싸운다. 《오디세이아》 22권 후반부에 이르러 전투가 끝나 갈 때, 노래하던 페미오스는 아직 살아 있다. 원전은 그가 구혼자들 사이에서 억지로 노래했다고 서술한다. 그는 궁전 뒤쪽 문 근처에서 리라를 들고 있다가 제우스의 제단으로 피할지, 오디세우스에게 직접 간청할지 망설인다. 결국 리라를 내려놓고 오디세우스의 무릎을 붙든다. 가까이 있었으니 함께 죽어야 한다는 식의 빠른 분류가 눈앞의 위험이다.
페미오스는 자신이 원해서 연회에 왔던 것이 아니라 수가 많고 힘센 구혼자들에게 끌려왔다고 주장하며, 텔레마코스가 이를 증언할 수 있다고 말한다. 그의 말은 목숨을 건 당사자의 진술이므로 진지하게 들어야 하지만, 그 자체만으로 모든 사실이 확정되는 것은 아니다. 중요한 다음 단계는 현장을 아는 제삼자의 확인이다. 텔레마코스는 아버지에게 그를 해치지 말라고 말하며 결백하다고 부른다. 이어 어릴 때 자신을 돌보았던 전령 메돈도 살리자고 한다. 메돈은 의자 밑에 새로 벗긴 소가죽을 덮고 숨어 있다가 그 말을 듣고 나온다.
오디세우스는 텔레마코스가 두 사람을 구했다고 말한 다음, 페미오스와 메돈에게 살육이 끝날 때까지 뜰의 제단 곁으로 나가 있으라고 한다. 따라서 이 장면의 결말은 모두를 즉시 아무 조건 없이 본래 자리로 돌려보냈다는 이야기가 아니다. 살림과 현장 분리가 함께 이루어진다. 두 사람도 나가서 여전히 죽을까 두려워한다. 구조 결정을 받았다는 사실과 당사자가 곧바로 안심한다는 것은 다르다.
페미오스와 메돈의 사정도 하나로 섞지 말아야 한다. 페미오스에게는 연회에 강제로 동원되었다는 설명이 있고, 메돈에게는 텔레마코스의 어린 시절을 돌보았다는 기억이 있다. 두 사람 모두 같은 궁전에 있었지만 구체적인 행위와 증거의 종류는 다르다. 오디세우스가 그들을 한 번에 밖으로 내보낸 사실만 보고 두 사연이 똑같이 증명되었다고 말할 수는 없다. 또 제단 곁으로 나가라는 지시는 사면의 축제라기보다 피가 흐르는 현장을 벗어나는 임시 조치다. 장면의 작은 차이를 남겨 두어야 뒤의 해석도 과장되지 않는다.
출전은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22권 330~380행이다. Theoi의 A. T. Murray 영어 번역에서 간청, 텔레마코스의 증언, 오디세우스의 조치를 대조할 수 있다. 인물의 내면에 관한 추가 동기를 꾸며내지 않는다. 무릎을 붙드는 행동은 고대 서사 속 탄원의 형식이며, 뒤에서 말할 조직의 책임 심사는 나의 현대적 해석이다.
신화가 담고 있는 상징과 철학적 해석
내가 주목하는 물건은 페미오스가 내려놓은 리라다. 리라는 구혼자 연회에 그가 있었다는 눈에 보이는 흔적이다. 그러나 흔적은 곧 동의의 증거가 아니다. 그가 노래했다는 관찰, 강제로 불렸다는 그의 진술, 그 말을 뒷받침하는 텔레마코스의 증언은 서로 다른 층위에 있다. 같은 장면에 있었다는 사실만으로 행위의 선택권과 책임 정도를 동일하게 매기면, 힘센 자의 강요를 받은 사람까지 강요한 자와 묶는다. 나는 이 장면을 연좌의 속도를 늦추는 이야기로 읽는다.
그 해석이 설득력 있는 이유는 결론보다 결론에 이르는 순서 때문이다. 페미오스는 먼저 자기 상황을 말한다. 텔레마코스는 침묵하지 않고 두 사람을 구별해 달라고 요청한다. 오디세우스는 전투 중의 현장에서 그들을 분리한다. 위험한 공간에서 무조건 믿어 달라는 호소만 있었던 것도 아니고, 누가 누구 편이었는지 이미 안다는 힘의 확신만 있었던 것도 아니다. 목소리, 확인, 임시 안전조치가 짧게나마 이어진다. 내 판단으로는 이 순서가 단순한 관대함보다 중요하다. 잘못된 분류가 생명을 앗을 수 있는 상황에서 다시 살펴볼 여지를 만들기 때문이다.
다만 원전을 현대의 공정한 조사 절차라고 칭찬할 수는 없다. 텔레마코스는 권력자의 아들이고, 그가 기억하는 메돈의 돌봄은 편향된 증거가 될 수도 있다. 페미오스가 실제로 어떤 노래를 언제 얼마나 불렀는지 이 대목만으로 모두 알 수 없으며, 생존을 위한 진술을 교차 검토할 절차도 보이지 않는다. 게다가 구혼자들 옆에서 일한 다른 사람들에게 똑같은 발언 기회가 주어졌는지는 별개의 문제다. 강요의 가능성을 듣자는 원칙은 아무 주장이나 자동으로 무죄로 인정하자는 뜻이 아니다. 손해를 입은 사람들의 사실 확인 요구도 지워서는 안 된다.
앞선 이타카 맹약 글은 24권에서 도망가는 상대에 대한 추가 추격을 멈출 기준을 물었다. 보호 효과와 추가 피해를 비교한다는 태도는 유지한다. 이번 글은 그보다 앞선 22권의 별개 장면에서, 싸움이 막 끝나는 때 누구를 같은 책임 집단에 넣을지를 묻는다. 멈춤의 시간 기준을 되풀이하는 것이 아니라 책임 분류의 근거를 살핀다.
현대인이 얻을 수 있는 지혜와 나의 소감
가상의 상황을 생각해 보자. 작은 지역 행사 운영팀이 후원금 지출을 허위로 처리한 사실을 발견했다. 팀장이 결재를 지시했고, 계약직 기록 담당자는 해당 행사 현장에서 명단을 정리하고 홍보 사진을 올렸다. 일부 회원이 사진을 근거로 담당자 이름까지 공개하며 모두가 공모했다고 주장한다. 운영위원은 다음 날 회의에서 대응을 정해야 한다. 이것은 실제 경험을 보고하는 이야기가 아니라 판단을 시험하기 위한 가상 사례다.
첫째 선택은 팀장과 담당자를 한꺼번에 공모자로 발표하는 것이다. 대응이 빠르고 회원에게 단호해 보인다. 그러나 사진은 참석 사실만 보여 줄 뿐 허위 결재를 알고 승인했는지 보여 주지 않는다. 잘못 지목한 사람의 평판은 이후 정정으로도 회복하기 어렵다. 둘째 선택은 강요가 있었을 수 있으니 전원을 조사 없이 넘어가는 것이다. 이 경우 실제로 기록을 조작한 사람이 남아 있으면 증거를 지우거나 같은 일을 반복할 수 있다. 피해를 본 후원자와 행사 참가자의 설명 요구도 외면하게 된다.
내가 택할 셋째 선택은 즉시 안전조치와 책임 판단을 분리하는 것이다. 지출 권한을 잠정 중지하고 결재 로그와 원본 영수증을 보존하며, 이해관계 없는 사람에게 항목별 확인을 맡긴다. 담당자에게는 어떤 지시를 받았는지, 거절하면 어떤 불이익이 있었는지, 실제로 어느 단계에서 무엇을 입력했는지 따로 묻는다. 팀장에게도 같은 거래의 승인 근거를 제출하게 한다. 확인 전 공개 공지는 '지출을 조사 중이며 결재 권한을 잠정 제한했다'는 범위에 머물고, 개인의 공모 여부를 단정하지 않는다. 소명 기한과 조사 결과를 알릴 날짜도 정해 둔다.
이 선택에도 비용이 있다. 독립 검토에 돈과 시간이 들고, 결재를 묶으면 예정된 참가비 환불이나 장소 대금 지급이 늦어질 수 있다. 따라서 긴급한 환불은 별도 승인자 두 명을 세워 처리하고, 자료 접근 권한은 최소한으로 제한해야 한다. 오래 끄는 '잠정' 조치가 사실상 징벌이 되지 않도록 기한을 명시한다. 내 기준은 행위와 권한을 입증하는 자료, 강요 여부를 확인할 독립 근거, 지연이 낳는 피해를 함께 보는 것이다. 로그가 담당자의 자발적 수정과 은폐를 보여 준다면 판단을 강화해야 하고, 지시와 권한 제한만 확인된다면 공모 표현을 거둬야 한다.
이 장면을 읽으며 내가 새롭게 내리는 판단은 모든 동석자를 보호하자는 무조건적인 면책이 아니다. 페미오스가 리라를 내려놓은 자리에서 필요한 것은 그가 그 자리에 있었다는 사실과 그가 그 일을 선택했다는 결론을 분리하는 일이다. 누군가의 진술을 듣고, 확인 가능한 타인의 말과 자료를 찾고, 위험한 현장에서 먼저 분리하되 결론은 증거에 맞춰 고치는 것. 그래서 첫 질문에 대한 내 답은 이렇다. 같은 무리 곁에 있었다는 이유만으로 같은 책임을 물어서는 안 된다. 책임은 각자의 선택권과 행위가 확인되는 만큼만 물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