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로 보는 부분적 보호의 책임 (오디세우스와 마론의 포도주, 선행과 면책,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

나는 《오디세이아》에서 이스마로스를 약탈한 오디세우스가 아폴론의 사제 마론과 그 가족은 보호했다는 대목을 붙잡는다. 약탈 한가운데서 한 가족을 지킨 선택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그들이 준 포도주가 훗날 목숨을 구했다는 결과까지 알면, 그 보호를 선행이라고 쉽게 부르고 싶어진다. 하지만 한 사람을 지킨 일과 다른 사람들에게 가한 피해를 같은 저울에서 지워도 되는지 묻고 싶다.

존 플랙스먼이 그린 오디세우스와 외눈박이 폴리페모스의 만남

그림: John Flaxman Jr., OdysseyPolyphemos,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그림은 마론이 아니라 그가 준 포도주가 사용되는 폴리페모스 장면을 나타낸다.

오디세우스와 마론의 포도주 신화 이야기

호메로스의 《오디세이아》 9권에서 오디세우스는 파이아케스인들에게 자신의 귀향담을 들려준다. 그는 트로이를 떠나 키코네스인의 도시 이스마로스에 이르러 도시를 약탈하고 사람들을 죽였으며 여자들과 재물을 나누었다고 말한다. 이어 빨리 떠나자고 했으나 동료들이 해변에 머물렀고, 키코네스인들의 반격을 받아 배마다 여섯 명씩 잃었다고 회고한다. 이 전쟁의 피해를 지운 채 뒤의 선물만 떼어 읽으면 이야기의 윤리적 순서가 뒤바뀐다.

같은 권 193~215행에서 오디세우스는 폴리페모스의 동굴로 가져간 짙고 단 포도주의 출처를 설명한다. 이스마로스의 아폴론 사제 마론은 오디세우스 일행이 자신과 아내, 아이를 보호한 데 답하여 금과 은으로 만든 그릇, 특별한 포도주를 건넸다. 본문은 마론의 예물과 보호의 이유를 연결하지만, 그 가족이 그 자리에서 얼마나 자유롭게 선택할 수 있었는지까지 자세히 말하지 않는다. 선물의 존재가 곧 완전한 동의의 증거는 아니다.

오디세우스는 이 포도주를 가죽부대에 담아 열두 동료와 동굴로 간다. 동료들은 치즈와 가축을 챙겨 떠나자고 권하지만, 그는 주인을 만나 환대의 선물을 얻고 싶어 기다린다. 폴리페모스가 동료들을 잡아먹은 뒤, 오디세우스는 포도주를 세 차례 건네 취하게 하고 ‘아무도 아니다’라는 이름을 댄다. 이때 마론의 포도주는 탈출을 위한 수단으로 쓰인다. 그러나 원전의 순서는 보호 → 예물 → 뒤늦은 사용이다. 오디세우스가 애초에 괴물을 쓰러뜨릴 도구를 얻으려고 사제 가족을 보호했다고 쓰여 있지 않다.

근거는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9권 39~66행, 193~231행, 345~371행이다. A. T. Murray 영어 번역 전문에서 사건 순서와 인물을 확인할 수 있다. 이것은 오디세우스가 들려주는 고대 서사이지, 현대 조직 윤리의 규칙을 직접 제시한 글은 아니다.

신화가 담고 있는 상징과 철학적 해석

내가 주목하는 것은 포도주의 효능보다 보호의 범위다. 약탈에 참여한 일행이 한 사제의 가족을 지켰다면, 그 행동 자체는 공격을 멈춘 국소적인 선택이다. 다른 피해가 계속되었다고 하여 그 가족을 지킨 일을 없던 일로 만들 필요는 없다. 동시에 그 일을 내세워 이스마로스의 나머지 사람들에게 가한 폭력을 선행의 배경으로 바꾸어서도 안 된다. 한 장면의 옳은 행동은 다른 장면의 책임을 자동으로 상쇄하지 않는다.

마론의 예물이 나중에 탈출의 실마리가 되었다는 인과관계는 매력적이다. 그러나 좋은 결과와 처음 선택의 정당성은 다른 질문이다. 만일 그 포도주를 쓸 일이 없었다면 가족을 지킨 선택은 무가치했을까? 그렇지 않다고 생각한다. 반대로 포도주가 선원들을 살렸다고 해서 도시 약탈이 필요한 준비 단계였다고 말할 수도 없다. 원전이 허락하는 말은 마론이 보호에 답해 예물을 주었고, 그 가운데 포도주가 뒤에 쓰였다는 데까지다. ‘착한 일이 반드시 보상받는다’는 교훈은 원전보다 훨씬 큰 주장이다.

마론이 아폴론의 사제였다는 점도 한계다. 오디세우스의 서술에서는 신성한 지위 때문에 가족을 보호한 듯하다. 이것은 보호가 이루어진 이유를 설명하지만, 사제가 아닌 사람은 덜 보호받아도 된다는 규범을 만들지는 않는다. 현대적 관점에서 나는 지위가 아니라 침해 위험과 당사자의 권리를 기준으로 넓혀 읽는다. 다만 고대 전쟁의 언어를 오늘의 인권 언어로 번역하는 것은 나의 해석이지 호메로스가 직접 말한 문장이 아니다.

여기서 의미 있는 반론은 ‘적어도 마론 가족은 실제로 살렸는데 왜 그 일에 계속 단서를 붙이느냐’는 것이다. 맞는 지적이 있다. 피해를 줄인 구체적 행동을 인정하지 않으면 다음 행동을 바꿀 동기도 사라질 수 있다. 그래서 나는 그 보호를 깎아내리지 않는다. 대신 칭찬의 범위를 그 가족에게 실제로 한 일로 한정한다. 피해자 전체의 경험을 한 집의 감사 표시로 대표하게 만들지 않는다. 앞서 쓴 이스마로스 글은 약탈 뒤 해변에 머무를지 철수할지의 위험 판단을 물었다. 여기서는 같은 도시의 별도 대목인 마론 가족의 보호와 예물이 다른 피해를 면책하는지 묻는다. 앞 글의 ‘철수가 앞선 침해를 면죄하지 않는다’는 판단은 유지하고, 선행처럼 보이는 예외에도 같은 기준을 적용해 넓힌다.

또 하나 경계할 것은 뒤늦게 생긴 이익을 최초 행동의 의도로 되돌려 쓰는 서술이다. 포도주를 지닌 오디세우스가 동굴에서 기지를 발휘한 것은 사실이지만, 마론 가족을 보호한 순간에 그 결과를 알고 있었다고 말할 근거는 없다. 결과를 아는 독자는 여러 사건을 하나의 계획처럼 묶기 쉽다. 사후의 성과는 당시의 정보와 동기를 대신하지 못한다. 그래서 판단할 때는 그때 알 수 있었던 것과 뒤에 알게 된 것을 나누어야 한다.

현대인이 얻을 수 있는 지혜와 나의 소감

가상의 상황을 하나 생각해 본다. 지역 기록관이 건물 누수 때문에 소장품을 급히 옮긴다. 이동팀이 어느 한 상자의 자료를 물에 젖지 않게 건져냈고, 소유자가 감사 편지와 자료 목록의 사본을 건넸다. 그런데 같은 복도에 있던 다른 상자 두 개는 팀의 분류 실수로 젖었고, 소유자에게 아직 알리지 않았다. 마론의 포도주처럼 그 사본은 나중에 훼손된 기록의 이름을 복원하는 데 도움을 줄 수도 있다. 그러나 미래의 유용성이 지금의 누락된 통보를 정당화하지는 않는다. 이 상황은 나의 실제 경험이 아니라 판단을 시험하기 위한 가정이다.

선택지는 셋이다. 첫째, 성공적으로 건진 상자와 감사 편지를 전면에 내세워 일을 잘 마쳤다고 발표한다. 팀의 사기는 빠르게 회복되고 지원을 받을 수도 있지만, 젖은 자료의 소유자가 대응할 시간을 잃는다. 둘째, 분류 실수가 알려질 때까지 모든 결과를 숨긴다. 성급한 공개로 생길 혼선을 피할 수는 있어도, 손상된 자료의 건조·보존이 늦어진다. 셋째, 건진 상자는 사실대로 기록하되 젖은 두 상자의 상태와 분류 경위를 따로 확인하고 소유자에게 즉시 알린다. 건조 전문가와 대체 보관 공간을 부르고, 누가 어떤 비용과 시한을 책임질지 공개한다. 이 선택에는 추가 인건비, 평판 손실, 작업 지연이 따른다. 나는 조건이 허락한다면 셋째를 택하겠다.

판단 기준은 선행을 크게 보이게 할 수 있느냐가 아니라 남은 피해를 줄일 수 있는 시간이 얼마나 남았느냐다. 종이가 젖은 지 오래되지 않았다면 통보와 보존 조치를 병행해야 한다. 상자 내용을 확인하지 못했다면 피해 규모를 단정하지 말고 미확인이라고 기록한다. 개인정보나 민감한 기록이 있다면 모든 세부를 공개 게시판에 올리지 않고 각 권리자와 담당자에게 필요한 범위에서 알린다. 예산이 모자라면 잘 건진 자료를 선전하기 전에 보존 우선순위와 전문가 의뢰 비용을 설명해야 한다. 작은 구조가 큰 손실의 증거를 덮는 포스터가 되어서는 안 된다.

물론 누수 대응과 고대 도시 약탈은 같은 종류의 피해가 아니다. 이 가정은 전쟁 폭력을 사소한 업무 실수로 축소하려는 비유가 아니라, 부분적인 좋은 결과가 전체 책임을 지우지 못한다는 판단 구조만 떼어 시험하는 장치다. 실제 폭력의 책임은 훨씬 무겁고, 피해자의 안전과 회복을 중심에 두어야 한다. 마론이 건넨 포도주가 생존에 기여한 사실도, 그가 사제였다는 사실도 다른 이들의 목소리를 대신하지 못한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간다. 약탈 한가운데서 마론 가족을 지킨 선택은 어떻게 평가해야 할까? 나는 그 가족에게 가해질 위해를 멈춘 제한적이지만 실제인 보호로 평가한다. 그러나 그 대가가 훗날 영웅을 살렸다는 이유로 약탈 전체에 면죄부를 주지는 않는다. 현대의 결정에서도 한 사람을 도운 사실은 정확히 인정하되, 아직 손상된 사람과 자료가 남아 있는지 끝까지 확인하는 태도가 더 책임 있는 지혜라고 생각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