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로 보는 애도와 보복의 경계 (에우페이테스의 집회, 상실과 평화,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

《오디세이아》 마지막 장면에서 안티노오스의 아버지 에우페이테스는 아들을 잃은 사람들을 모아 오디세우스에게 맞서자고 외친다. 그의 슬픔은 분명한데, 그 외침을 따르는 일이 남은 사람들을 지키는 길일까? 나는 상실을 인정하면서도 다음 죽음을 막을 책임은 어디에 있는가라는 질문으로 이 장면을 읽는다.

장 알로에게 귀속되는 1812년 회화에서 오디세우스와 구혼자들이 대치하는 모습. 이후 유족 집회의 직접 묘사는 아니다
장 알로에게 귀속, 〈오디세우스와 구혼자들〉(1812). Wikimedia Commons, 퍼블릭 도메인. 후대 회화이며 이 글의 유족 집회 자체를 그린 것은 아니다.

에우페이테스와 이타카 유족의 집회 신화 이야기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24권 약 412~471행에서 이타카 사람들은 오디세우스에게 죽은 구혼자들의 시신을 거두어 장사 지낸다. 그중 안티노오스의 아버지 에우페이테스가 민회에서 일어난다. 그는 아들의 죽음을 애도하면서 오디세우스가 트로이 원정에서 많은 동료를 잃고 귀향 후에는 이타카의 젊은이들을 죽였다고 비난한다. 복수하지 않으면 후세의 수치가 될 것이라는 말도 덧붙인다. 개인적인 비탄이 공동체의 명예를 건 무장 행동의 요구로 바뀌는 지점이다.

이때 메돈과 음유시인이 나타난다. 살아남은 메돈은 오디세우스 곁에서 신과 같은 존재가 싸움을 도왔다고 증언한다. 할리테르세스는 이전 경고를 기억하라고 말하며, 다시 싸우러 가면 스스로에게 불행을 부를 것이라고 만류한다. 신의 개입에 관한 진술을 현대의 물증처럼 받아들일 수는 없다. 그러나 고대 서사 속 집회에는 적어도 에우페이테스의 말과 다른 진술, 과거 행동을 되돌아보라는 경고가 함께 놓여 있다. 모두가 같은 설명을 듣고도 같은 결론에 이르지는 않는다.

24권 약 463행 뒤 사람들은 갈린다. 절반이 넘는 이들이 함성을 지르며 무기를 들지만, 나머지는 앉아 남는다. 에우페이테스가 이끄는 무리는 오디세우스 쪽으로 간다. 이어 아테나가 제우스에게 더 큰 싸움을 계속할지 묻고, 제우스는 복수 뒤에 맹세와 평화를 세우라고 답한다. 실제 충돌에서 라에르테스의 창에 에우페이테스가 죽고, 오디세우스 일행이 추격한다. 아테나가 양편에 멈추라고 외친 뒤에도 오디세우스는 다시 덤벼들려 한다. 마침내 아테나의 재차 명령에 따르고 두 편 사이에 서약이 세워진다. 죽음을 막은 결말은 처음부터 사람들의 자발적 합의만으로 나온 것이 아니다.

여기서 말하는 사건과 인물의 행동은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24권, A. T. Murray 영어 번역의 약 412~548행에 근거한다. 누가 실제로 완전한 정의를 얻었는지, 유족들이 이후 어떻게 살았는지까지 원전이 상세히 보여주지는 않는다. 후대 그림도 구혼자들과의 앞선 대치를 그린 것이지, 에우페이테스의 집회를 기록한 장면이 아니다.

신화가 담고 있는 상징과 철학적 해석

내가 붙드는 장면은 승자의 궁전보다 애도 직후의 집회다. 에우페이테스의 상실을 가볍게 여기면 그의 말이 왜 사람들을 움직였는지 설명할 수 없다. 반대로 그의 슬픔만으로 무장 행동을 정당화하면, 이견을 제시한 메돈과 할리테르세스, 무기를 들지 않은 사람들의 판단은 지워진다. 슬픔은 발언할 자격과 돌봄의 이유가 되지만, 타인의 생명을 다시 위험에 넣을 결정의 충분한 근거는 아니다. 이것이 내가 이 대목에서 택하는 현대적 해석이다.

특히 에우페이테스는 아들의 죽음을 '수치'의 언어와 결합한다. 원전에서 그는 복수하지 않으면 후대까지 욕을 먹을 것이라고 설득한다. 이 말은 사실 확인을 요구하는 문장이 아니라 사람들에게 신분과 명예의 부담을 지우는 문장이다. 누가 잘못했는지, 어떤 조치가 필요한지, 또 다른 사망의 위험은 얼마인지가 한꺼번에 '가만히 있지 말자'로 압축된다. 행동의 속도가 판단의 질을 증명하지 않는다. 절반 넘게 일어섰다는 사실도 그 행동의 옳음을 입증하지 않는다.

그러나 여기서 유족에게 무조건 침묵하라고 말해서는 안 된다. 구혼자들은 오디세우스의 집에서 자원을 소비하고 가족을 위협했지만, 각 죽음의 경위와 과도한 폭력 여부를 따져 묻는 일은 남는다. 더구나 이야기 속 오디세우스도 아테나의 첫 중지 명령 뒤 곧장 침착해지지 않는다. 내가 옹호하는 기준은 패자에게만 복수를 멈추라 하고 승자의 공격은 면제하는 규칙이 아니다. 양편 모두가 추가 위해를 멈추고, 손실과 책임을 별도의 절차에서 말할 수 있어야 한다.

같은 24권을 다룬 오디세우스와 라에르테스의 정원 글은 부자의 재회에서 기억을 신뢰의 단서로 삼되 권한을 서두르지 않는 문제를 물었다. 그 신중함은 유지하지만, 이번에는 뒤이은 유족 집회와 무장 충돌에서 슬픔의 인정이 다시 싸울 권한과 같은지 묻는다. 사건과 결정 단위가 다르다.

서사에서는 여신과 제우스의 명령이 종전을 가능하게 한다. 현실에는 모두가 받아들일 신적 중재자가 없다. 따라서 '서로 잊어라'를 피해자에게 강요하는 것으로 읽으면 이 신화는 위험해진다. 나는 망각의 명령보다, 무기가 내려간 뒤에야 손실을 따질 수 있다는 순서를 제한적으로 끌어온다. 진상 확인과 유족의 이의 제기, 생존자의 안전을 한 번에 끝내려는 뜻은 아니다. 이 조건을 달지 않으면 평화라는 말이 책임 회피의 가림막이 될 수 있다.

멈추는 결정 자체에도 책임이 따른다. 무기를 내려놓자고 말하는 사람이 손실 조사와 추모를 무기한 연기한다면, 겉보기의 평온은 유족에게 침묵 비용을 떠넘긴다. 그래서 나는 종전의 조건을 세 가지로 읽는다. 당장 더 다치지 않을 안전 장치, 서로 다투는 사실을 확인할 시간표, 결과에 따라 책임을 요구할 통로다. 이것은 《오디세이아》가 제시한 제도 목록이 아니라, 마지막 서약을 오늘의 의사결정에 옮길 때 필요한 보완이다.

현대인이 얻을 수 있는 지혜와 나의 소감

가상의 사례를 하나 놓아 보자. 지역 기록관의 화재로 보관 중이던 공동 기증 자료 일부가 훼손되었고, 기증자 가족들이 긴급 설명회에 모였다. 기록관은 대피와 진압을 위해 일부 보존 서고를 열었지만, 경보가 늦게 전달됐다는 의혹도 있다. 한 가족 대표가 '오늘 바로 책임자를 공개적으로 지목하고 모든 자료를 즉시 반출하자'고 요구한다. 손실을 본 가족이 분노하고 설명을 요구하는 것은 정당하다. 하지만 이날 밤의 선택은 분노의 정당성과 반출 결정의 안전성을 따로 보아야 한다.

첫째 선택은 요구대로 담당자를 즉각 지목하고 모든 상자를 다른 건물로 옮기는 것이다. 빠른 행동을 보여줄 수 있지만, 젖은 자료를 이동하다 훼손을 키우거나 확인되지 않은 개인에게 책임을 고정할 수 있다. 둘째는 조사 보고서가 완성될 때까지 아무 조치도 하지 않는 것이다. 성급한 비난은 피하겠지만, 곰팡이와 추가 손상의 시간을 허비하고 가족의 불신을 키운다. 셋째는 그날 밤 출입을 제한하고 전문 보존 인력과 함께 위험 구획만 임시 격리하며, 경보 기록과 이송 기록을 보전한 뒤 가족들에게 확인된 사실·미확인 부분·다음 설명 시각을 함께 알리는 것이다. 이 방법도 인력비와 임시 보관료가 들고 답을 기다리는 가족에게 답답하다. 비용이 없어서가 아니라 다른 두 선택의 되돌리기 어려운 손실을 줄이기 위해 택한다.

결정 기준을 구체적으로 적어 두어야 한다. 지금 자료가 더 손상될 가능성이 높은가, 상자별 상태를 확인하며 옮길 인력이 있는가, 원래 서고보다 안전한 임시 공간인가, 경보 지연의 책임을 뒷받침할 로그가 확보됐는가. 즉시 안전 조치를 취하되 공개적인 책임 판정은 근거가 모일 때까지 미룬다. 반출을 하더라도 대상·담당자·시한을 한정하고 가족 대표가 이의 제기할 경로를 남긴다. 중지선과 재검토 시점이 없는 '긴급 대응'은 또 다른 위험이 된다.

이 사례는 내 경험담이 아니라 판단을 시험하기 위한 가정이다. 나는 에우페이테스가 틀렸다고 단정하는 간단한 교훈보다, 그의 말을 들으며 자리에 남은 사람들의 존재를 더 중요하게 읽는다. 그들은 상실을 모르기 때문에 앉아 있었던 것으로 묘사되지 않는다. 집회의 이견은 슬픔 속에서도 행동의 범위를 다시 물을 수 있음을 보여준다. 다만 원전은 그들이 어떤 대안을 제시했는지 세세히 기록하지 않는다. 따라서 오늘의 절차와 비용 계산은 내가 덧붙인 것이지 호메로스의 지침이 아니다.

처음의 질문으로 돌아가면, 아들을 잃은 에우페이테스의 외침을 따르는 일이 남은 사람을 지키는 길인가? 내 대답은 상실을 공적으로 인정하고 책임을 따질 길을 열되, 다음 죽음을 부를 무장 행동은 그 정당한 슬픔과 분리해야 한다는 것이다. 기록관의 가상 결정에서도 피해를 즉시 보호하고 증거를 보존하면서 비가역적 판정은 미룬다. 평화는 '잊으라'는 한마디가 아니라, 위험을 멈춘 뒤에도 손실을 말하고 확인할 수 있는 조건에서 시작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