그리스 신화로 보는 응답하지 않을 권리 (아이아스의 혼령, 사과와 침묵, 현대인에게 주는 메시지)

오디세우스가 저승에서 아이아스의 혼령을 불렀는데, 아이아스는 한마디도 하지 않고 돌아선다. 나는 이 침묵 앞에서 묻고 싶다. 뒤늦게 건넨 말이 화해의 기회를 만들려면, 말하는 사람은 먼저 무엇을 인정해야 할까? 《오디세이아》 11권의 짧은 대화를, 사과를 요구할 권리와 응답하지 않을 권리를 함께 생각하는 장면으로 읽어 보려 한다.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둘러싼 다툼 뒤 칼 앞에 앉은 아이아스를 그린 고대 도기 그림의 19세기 복제화

이미지: Wikimedia Commons, Ajax suicide.jpg, 19세기 프랑스 화파의 고대 도기 그림 복제화, 퍼블릭 도메인. 저승의 대화가 아니라 아이아스의 죽음에 앞선 장면을 보여 준다.

아이아스의 혼령과 오디세우스 신화 이야기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11권에서 오디세우스는 저승의 혼령들을 만난다. 아킬레우스와 이야기하고 난 뒤, 다른 죽은 이들이 곁에 와 저마다 가까운 사람의 소식을 묻는다. 그러나 텔라몬의 아들 아이아스의 혼령만은 멀찍이 따로 서 있다. 서술자는 그가 아킬레우스의 무구를 놓고 벌인 경쟁에서 오디세우스에게 패한 일 때문에 여전히 분노한다고 밝힌다. 이 장면의 핵심은 단순히 두 영웅이 사이가 나빴다는 요약이 아니라, 다른 혼령들은 말을 걸 때 아이아스만 거리를 지킨다는 대비다.

오디세우스는 그 무구를 차라리 얻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한다. 뛰어난 전사 아이아스가 그 일로 죽었고, 그리스군이 그를 계속 애도한다고도 한다. 그러면서 재앙의 책임을 제우스에게 돌리고, 아이아스에게 다가와 자신의 말을 들어 달라며 분노를 누그러뜨리라고 청한다. 아이아스는 아무 말도 하지 않고 다른 혼령들이 있는 에레보스로 떠난다. 원전은 오디세우스의 후회와 아이아스의 침묵을 모두 기록하지만, 어느 쪽이 옳았다는 최종 판결을 덧붙이지 않는다.

근거 장면은 호메로스 《오디세이아》 11권 약 541~567행(Theoi, A. T. Murray 영문 번역)이다. MIT Classics의 Samuel Butler 번역도 같은 대목을 대조할 수 있다. 무구 판정의 경위와 아이아스의 죽음에 관해서는 다른 전승들이 더 많은 세부를 전하지만, 여기서는 《오디세이아》의 저승 대화가 실제로 말하는 범위에 집중한다. 특히 아이아스가 침묵한 정확한 내면의 이유를 새로 지어내지 않겠다. 서사시는 그의 분노와 행동은 보여 주되, 그가 어떤 사과 문장을 원했는지 직접 말하지 않는다. 따라서 그의 침묵을 오디세우스의 특정 문장에 대한 즉각적인 반응으로 단정하기보다, 그 문장이 놓인 관계 전체를 살펴야 한다. 판정의 공정성 자체도 이 한 장면만으로 확정할 수 없다. 나는 판정의 역사보다 말 걸기의 방식에 질문을 한정한다.

신화가 담고 있는 상징과 철학적 해석

나는 이 장면을 후회와 책임 인정이 같은 것은 아니다라는 질문으로 읽는다. 오디세우스가 무구를 얻지 않았으면 좋았겠다고 말하는 데에는 실제 후회의 무게가 있다. 죽은 아이아스를 훌륭한 전사로 높이고 공동체의 상실도 인정한다. 이 말을 값싼 계산으로만 취급하면 원전의 애도를 놓친다. 하지만 그의 말은 곧 책임을 신들에게 넘기고, 상대에게 분노를 거두라고 청하는 방향으로 이동한다. 후회의 진정성을 증명할 수 없는 내가 주목하는 것은 감정의 양이 아니라 말의 순서와 주체다. 상처를 입은 상대의 판단보다 말하는 이의 설명과 화해 요청이 먼저 놓인다.

아이아스가 다른 혼령들에게서 떨어져 서 있는 모습은 그가 대화에 들어갈지부터 스스로 정한다는 경계처럼 보인다. 물론 이 '경계'는 고대 시인의 명시적 윤리 용어가 아니라 현대 독자인 나의 해석이다. 원전에서는 우정 회복을 위한 중재 절차도, 오디세우스가 자신의 몫을 인정하는 긴 대화도 없다. 그래서 나는 침묵을 '언제나 용서하지 말라'는 명령으로 일반화하지 않는다. 다만 아이아스가 말을 하지 않았다는 사실은, 말을 건넨 사람이 대답까지 받을 권리를 자동으로 얻지 못한다는 제한을 선명하게 만든다.

앞서 쓴 아이아스와 오디세우스의 씨름 글은 《일리아스》 23권에서 두 선수가 계속 겨루려 할 때 아킬레우스가 경기를 중단하고 보상을 나눈 사건을 다뤘다. 그 글에서는 더 겨루는 비용이 판정의 이익을 넘는지 물었다. 이번에는 다른 작품의 저승 장면에서 이미 끝난 판정과 죽음 이후, 말을 재개할지 결정할 권한을 묻는다. 사람을 더 소모시키지 않는다는 관심은 이어지지만, 승부를 운영하는 제삼자의 판단을 피해 당사자의 응답 선택으로 바꾸어 보려는 것이다.

반론도 중요하다. 오디세우스가 제우스를 거론한 것은 책임 회피만이 아니라, 죽음 앞에서 개인이 통제할 수 없었던 힘을 설명하는 고대적 애도일 수 있다. 아이아스가 응답했다면 두 사람의 대화가 달라졌을 가능성도 배제할 수 없다. 침묵을 절대적인 도덕적 승리로 만들면, 상호 오해를 풀 수 있는 통로까지 지워 버린다. 그래서 내가 택한 결론은 사과를 그만두라는 것이 아니다. 상대가 응답하지 않을 자유를 남겨 둔 채, 자신의 행위와 영향부터 구체적으로 말하라는 조건이다. 상대가 한 번 돌아섰다는 이유로 영원히 무관심해져도 된다는 뜻 또한 아니다.

현대인이 얻을 수 있는 지혜와 나의 소감

가상의 상황을 하나 세워 보자. 지역 문화재 기록팀의 책임자가 공개 전시 자료를 만들면서 동료 연구자의 검토 의견을 충분히 반영하지 않았다. 그 결과 이름 표기가 빠진 채 자료가 공개되었고, 오류를 발견한 연구자는 후속 회의 참석을 거절한다. 이는 내 경험이나 실재 사건이 아니라, 아이아스가 말을 거절한 장면을 현실의 의사결정으로 시험하기 위한 가정이다. 무구를 둘러싼 고대의 죽음과 오늘의 표기 오류를 같은 크기의 피해로 비교하려는 것도 아니다. 닮은 점은 판정 뒤 말을 걸려는 쪽이 상대의 답을 통제할 수 없다는 구조에만 있다.

책임자에게는 세 가지 선택이 있다. 첫째, 단체 대화방에 '불편했다면 미안하지만 일정 때문에 어쩔 수 없었다'고 올리고 곧바로 회의 복귀를 요구한다. 속도는 빠르지만 누락 사실과 수정 주체를 흐리고, 피해자가 공개 자리에서 감정까지 설명하게 만드는 비용이 있다. 둘째, 상대가 답하지 않으니 아무 수정도 하지 않고 지나간다. 추가 접촉은 피할 수 있지만 잘못된 표기와 기록의 책임을 방치한다. 셋째, 공개 자료의 누락을 먼저 확인해 정정 절차와 담당 시한을 제시하고, 개인에게는 짧게 자신의 결정과 영향, 수정 조치를 알리되 답변이나 면담을 요구하지 않는다. 이 방법은 검토와 수정 시간이 들고, 즉각적인 화해를 얻지 못할 수도 있다. 그래도 피해의 실질적 부분을 먼저 고친다.

나는 세 번째를 택하겠다. 기준은 '내 사과가 진심으로 들리는가'가 아니다. 틀린 기록이 실제로 고쳐지는가, 책임 소재가 흐려지지 않는가, 상대가 답하지 않아도 불이익을 받지 않는가다. 책임자는 최초 검토본과 공개본을 대조해 누락을 확인하고, 정정 이력을 남겨 다시 인용하는 사람이 이전 오류를 알 수 있게 해야 한다. 이미 배포된 인쇄물이 있다면 회수 가능 범위와 정오표 발행의 비용도 계산해야 한다. 동료의 일정 때문에 즉시 회수가 어렵다면, 언제 어떤 매체부터 고칠지 구체적으로 공개할 수 있다. 이것이 상대의 감정적 응답을 기다리지 않고도 할 수 있는 책임이다.

그다음 연락은 한 번의 설명으로 끝나야 한다는 뜻이 아니다. 오류가 여러 사람에게 퍼졌다면 추가 수정 결과를 알릴 필요가 있다. 그러나 매번 답장을 독촉하거나 제삼자를 동원해 마음을 돌리려 해서는 안 된다. 공동 업무상 반드시 만나야 한다면 회의의 목적, 필요한 자료, 참석하지 않아도 의견을 낼 경로를 먼저 제시한다. 업무 복구와 관계 회복은 서로 다른 시간표를 가진다. 앞의 것은 책임자의 의무로 진행할 수 있지만, 뒤의 것은 상대의 선택 없이 완료를 선언할 수 없다. 물론 긴급한 법적 기한이나 안전 문제처럼 상대의 참여가 꼭 필요한 때에는 침묵을 무한정 기다릴 수 없다. 그때도 필요한 결정만 명시하고 독립된 검토 경로를 마련해야지, 사과 수용을 참여 조건으로 삼아서는 안 된다.

오디세우스는 후회와 애도를 말했지만 아이아스의 말을 얻지 못했다. 나는 그 결과를 화해의 실패담으로만 읽지 않는다. 처음의 질문, 뒤늦게 건넨 말이 화해의 기회를 만들려면 무엇을 인정해야 하는가에 대한 내 대답은 이렇다. 상대가 돌아서도 남는 자신의 수정 책임을 먼저 인정하고, 응답할지 말지는 상대에게 남겨 두어야 한다. 말을 건넨 뒤 침묵이 돌아왔다면, 그 침묵을 깨뜨릴 권리를 주장하는 대신 이미 바로잡을 수 있는 일을 계속하는 것이 더 설득력 있는 시작이다.